
"물망초, 나를 잊지마세요"
여긴 어디지.
아마 내가 눈을 떴을 때쯤, 이 곳은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님을 알수 있었던건 코를 찔러오던 일종의 썩은내였다.
"조심해!"
바로, 그 순간 어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던 곳을 쳐다보니, 사람의 형태를 했지만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향해 조금씩 달려오고 있었다. 그 무언가의 눈과 마주치니, 겁이 났는지 몸이 말을 따라주지 않았고,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이내 죽는건가, 하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그 여자가 앞에서 서있었으므로. 우리의 시작은 그때 부터 였을것이다.
"이 곳은 위험해. 빨리 일어서. 아무것도 없는거 같은데, 이러고 있다간 좀비한테 물어 뜯겨."
여자는 단도로 빠르게 무언가를 찔렀고, 이내 초록색의 액체가 하늘로 튀어 올랐다. 아마도, 좀비인것 같았다. 내가 원래 살던 세상에서는 "영화"에서만 나올법한 일이였기에, 또다시 정신이 아찔해 왔다. 여자는 내 앞에 주저 앉아 나의 상태를 살피더니 손을 건냈다. 아무래도, 내가 현재로썬 자신에게 위험하지 않은 상황임을 알았나 보다.
분명 내가 한 선택은 후회가 될 선택이였다.
그때까지는 전혀 몰랐던 일이였다. 지금에서야 생각나는 거지만, 나는 참 염선혜의 도움을 수없이 받았던 거라고. 그 존재를 무서워 하는 내게 유일한 구원자였기에. 그 따뜻함이 묻은 상처 투성이인 선혜의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 조금이나마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염선혜를 만난 이후 많은것들을 목격했다. 또한, 염선혜는 내게 스스로 지킬수 있는 법들을 알려줬다. 염선혜는 주 무기가 칼이였고, 최소한의 체력으로 좀비들을 제압하는데 사용했다. 식량을 어디서 구해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염선혜는 늘 좀비들을 해치우고 나면 손에쥐고 는 늘 가지고 나갔던 비닐에 통조림들이 가득 넣어져 있었다. 그 뿐이랴. 염선혜는 최소의 배려를 최대한으로 늘어 벌렸다. 늘 염선혜는 비상용으로 약들 또한 소지하고 다니며 정말이지 살거나, 살릴 가망이 없는 이들을 제외하곤 늘 다가가 약을 쥐어줬다. 내가 한소리라도 하면 선혜는 괜찮아. 많아. 라며 얼버무리곤 했다.
"언니."
"응"
"사랑해."
다영은 원래 있던 세상에서 지금 엇갈린 세상으로 오게된 다영은 또 다른 사랑을 만났다. 원 세상에서는 모두가 반대를 할 사랑이며, 누구는 우리에게 더럽다는 표현을 썼을테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억압하지 않은 깨끗한 사랑이라고 감히 말할수 있었다. 그 깨끗한 사랑은 나를 홀려놓기에 알맞은 행위였다. 응, 나도 사랑해. 그 아이의 뺨을 붙잡고 볼에 입술을 짧게 붙였다 뗐다.
"가자."
응, 가자. 손을 내밀어 선혜의 손을 꽉 붙잡았다. 내가 이 세계에 온지도 어느덧 3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 상황이, 이 모든게 현실에선 이루어 질수없는 상황인지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달려오는 좀비들도 무서웠고,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생존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막막한 상황이였다. 부정적인 주다영과 달리 염선혜는 늘 긍정적이였다. 이 사태는 분명 인간이 한층 더 성장할수있는 기회라고. 그래서 난 이세계를 사랑하고 있다고. 주다영은 처음으로 염선혜를 믿지 않았다. 다만, 좀비들의 모습은 날이 가면 갈수록, 내가 살아 숨쉬는 이 곳에서 생존해갈수록 이제는 더이상 무서워 하지 않았다. 그저, 염선혜가 알려준 방법으로 이제는 더 이상 인간성이 없지만 한때는 인간이였기에. 염선혜는 늘 좀비를 죽이고 나면 두손 모아 명복을 빌었다. 염선혜가 나중에 말하기를, 이 좀비들도 한때는 사람이였기에 마지막 가는길에 울지말라는 의미로 빈다고했다. 그렇구나,하고 나 또한 명복을 빌어주었다.
"선혜야."
"응."
"...너는 어떤 사람이였어?"
이 세계에 익숙해졌지만, 문득 자신이 있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존도 지긋지긋 해지면, 나는 내가 있던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갈거라고,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하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매번 초록색의 피를 보고, 물려 죽은 사람의 시체는 길가에 자꾸만 보이는데. 적응을 하는데에도 무려 한달이나 걸린탓에 선혜는 매번 기다렸다. 언니가 우선이야. 나보다. 하고 말하는 선혜는 많이 용감한 사람이였다. 그래서, 주다영은 또다른 자신의 세상에 대한 미련을 조금은 떨쳐 버릴수 있었다.
"궁금해?"
"응. 내가 말했잖아. 난 원래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였다고."
"난 말이야. 사실 나도 많이 무서워 언니. 나는 다 잃었거든. 사랑도, 부모님도, 내가 키우던 강아지 두마리 마저도."
"...."
"나도 물어봐도 돼?"
곧 울것같은 눈으로 묻는 목소리에서는 왠지 모르게 서글픔이 묻어있는 목소리였다. 많이 외로웠구나. 하고 염선혜의 손을 잡아 나에게로 향하게 했다. 선혜를 껴안고, 염선혜가 편히 소리내어 울수있도록 나는 그저 그 아이의 등을 쓸어 내려주는 것만 해줄수 밖에 없었다. 염선혜는 처음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옷에 눈물을 흘리는지 조금씩 젖어 내렸다. 그래, 울어. 그렇게 울면 된다고, 염선혜의 머리를 손으로 만져주며 조용히 있었다. 이내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염선혜는 그대로 울기 시작했다. 그래, 선혜야. 울어. 그게 맞아. 저음으로 얘기해주며 토닥였다.
"언니."
"응."
"...사랑해."
"알아. 다 알지. 나도 사랑해."
"....어디 가면 안돼."
"응"
"설령..언니가 살던 세계로 돌아 갈수 있더라도 가면 안돼"
"....응."
원래 있던 세계의 모습이 흐릿해져 갈쯤이였다. 생수가 떨어진 이 상황에서 살아남기는 힘들었다. 설령 가진 식량이 있더라도 갈증은 식량이 해결해 주지 않으므로, 생수를 구해야만 했다. 생수를 구하기 위해 선혜는 다영과 함께 밤을 나섰다. 생수만 구하면 되니 조심만 하면 된다고. 염선혜의 결론은 그것이였다. 밤에는 좀비들의 움직임이 많이 둔해지는 만큼 소리에 예민한 좀비들을 건들이지만 않는다면 괜찮았다.
"언니"
"응"
"언니는 물망초의 꽃말이 뭔지 알아?"
"물망초?"
"나를 잊지 마세요."
나를 잊지마세요. 그대. 불안감이 느껴졌다. 염선혜는 알고있었다. 저 멀리서 무리가 달려오고 있다는것을. 여느 좀비때보다 빠르고 정확한 좀비들의 소리. 주다영을 지켜내고 싶었다.
"언니."
"응"
"지금부터 저기 뒷골목에 가있어."
"왜?"
"절대로 나오면 안돼."
알았지? 하고 웃는 염선혜였다. 선혜의 뜻대로 뒷골목을 향해 가려는 순간, 염선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도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이내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피냄새와 함께 염선혜는 쓰러졌다. 다영은 뒷골목에서 선혜가 와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이내 피냄새가 다영의 코에 도달했고,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나가 본 곳엔 염선혜가 좀비에게 물려 뜯겨 나가고 있었다. 선혜야, 안돼…… 염선혜! 안된다고!……… 정신이 핑 하고 돌았다. 선혜야 ……… 이내 눈이 감겼다.
"....."
다시 눈을 떴을때에는 병실이였다. 병실임을 알수 있었던 이유는, 병원 특유의 냄새 때문이였다. 손가락을 움직이니 옆에 며칠 잠을 못잔 탓의 어머니가 놀라 일어났다. 정신이 드니? 다영아? 하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말에 더 이상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얼마 동안이나 여기에 누워 있었으며, 내가 누워 있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리고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에 대하여. 다영은 다시 까무득 잠에 들었다.
"엄마………"
"다영아. 괜찮아?"
"왜 나 병원에………"
"사고가 났었어. 일주일 전에."
"사고?"
"모두가 죽을거라 예상한 큰 사고였어. 너는 횡단보도를 건넜고, 졸음운전을 하던 사람이 널 향해 달려왔대."
일주일 전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꼭 꿈을 꾼것만 같았다. 심정지가 왔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고 말하는 엄마였다. 심폐 소생술을 포기하지 않고 한 동안 그제서야 숨을 다시 내쉬었고 수술실에 들어가 5시간이 넘는 수술을 한 끝에야 가망이 보일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대체 어디에 있다 온거지.
"엄마 근데 …"
"응."
"여기 혹시 ……… 아니야"
"왜, 누구 찾아?"
"꼭...누군가를 잊어버린것만 같아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여자였다. 나와 비슷한 또래였지만 나보다는 어린. 검은 긴생머리에, 나보단 작은. 겁이 없는. 그 여자와 내가 세상이 미치도록, 너무 사랑해서 잊기 힘든 존재. 근데 ……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나이도. 그 여자는 누굴까.
깨어난지 3일만에 다영은 무서운 속도로 회복을 했다. 담당의 조차도 기적같은 일이라며 곧 퇴원을 해도 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다행이다. 하고 엄마는 나의 손을 붙잡았다.퇴원날이 정해진 후부터 매번 같은 꿈이 섞여 나왔다. 누군가가 죽었고, 누군가가 다시 살아났고, 누군가가 나에게 안겨 울었고, 누군가가 고백을 하는. 미칠정도였다. 대체 누구야. 너. 다영은 그 꿈을 꾸게 된 이후 매번 새벽까지 깨어있기를 반복했다. 핸드폰을 들어 문득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내가 머리가 내내 아팠던 이유. 내 심장이 떨려온 이유. 잊지말라던 네 목소리. 네 온기. 네 숨결. 네 얼굴.
선혜야.
내 전부야. 미안해.
잊어 버릴뻔 해서.
다영은 그날 미쳐버렸다. '염선혜'가 자신을 살렸다는 이유 하나로. '염선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희생을 한다면 주다영은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갈수 있다는걸. 선혜의 세상은 아무것도 모르던 다영이 살아남기엔 더러운 세계였다. 이 더러운 세계에서 살아남은 자신이 제일 잘 아니까. 그래서, 염선혜는 주다영을 원래 세계로 돌려 보내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택했다. 다영이 부디 무사히 돌아간다면,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사랑하는 다영 언니.
날 잊지 말아줘.
더럽고 추악한 내 세상에서 언니는
나의 또 다른 세상이였어.
....고마워, 언니.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