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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갓난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유독 잠을 많이 잤다. 밥 시간대가 되어 아이를 깨울 때면, 눈도 다 뜨지 않은 채로 젖병을 물던 아이였다. 가끔은 종일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아서, 아이의 부모님이 걱정할 때도 있었다. 잠자는 시간이야 뭐 커가면서 줄어들겠지, 하고 가볍게 넘기던 부모님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의 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아져만 갔다.

 

 

 

 

 

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잠은 많지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목적이 커다랗게 부풀어있기 때문에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인지 아이는 두통을 달고 살았고, 집에 돌아오면 쓰러지듯 누워 아주 깊게 잠이 들고는 했다. 꿈을 꿀 새도 없이.

 

 

 

 

 

그 날은 평소 아이의 날들과 같이 매우 피곤한 날이었다. 깨질듯한 머리를 붙잡고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온 아이는 가방을 던지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풀썩 누워 바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절로 잠에서 깨 눈을 뜬 아이는 본인 앞에 펼쳐진 전혀 다른 공간에 놀랐다. 온통 하얀색의 벽으로만 둘러싸여 있는 커다란 공간. 그 공간 가운데에는 어두운 갈색의 반짝이는 커다란 사무실 책상만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직감적으로 꿈이라는 것을 눈치챈 아이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그 책상에 가까이 다가갔다. 책상 앞에 다다른 아이는 매끈하고 커다란 책상을 손으로 조심스레 쓸었다. 단 한 톨의 먼지도 손에 묻지 않아 의아해하던 아이는, 책상 밑에서 불쑥 튀어나온 갈색 머리의 한 사람에 크게 놀라며 뒤로 넘어졌다.

 

 

 

 

 

“아, 뭐야 여기 누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경을 살짝 올린 그 남자는 아이를 보고 서서히 찌푸렸던 얼굴을 풀었다. 그리고는 찬찬히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들고있던 여러 부품들을 책상에 놓았다. 그 남자는 더러워진 장갑을 벗고 머리카락을 탈탈 털더니 아이에게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리고는 아이의 얼굴에 본인의 얼굴을 쑥 들이밀더니 말했다.

 

 

 

 

 

“여기 어떻게 왔냐?”

 

 

 

 

 

긴장한 채 남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이를 보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푹 쉬더니 아이에게 본인을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남자는 본인이 나왔던 책상 밑으로 다시 향했다. 순순히 남자를 따라간 아이는 책상 밑에 있는 계단을 보고 놀랐다. 하도 깊게 뚫려있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해서 굉음이 들려왔다.

 

 

 

 

 

“뭐해, 안 내려오고"

 

“아… 네 지금 가요"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던 아이는, 밑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놀랐다. 큰 기계들이 줄지어 서있고, 그 기계들은 굉음을 지르며 돌아가고 있었다. 멍 하니 그것들을 지켜보던 아이를 보며 한숨을 쉰 남자는 아이에게 말했다.

 

 

 

 

 

“시끄럽지?”

 

“네…”

 

“일단 나가자, 여기는 그냥 보여주려고 온 거야"

 

 

 

.

 

.

 

.

 

.

 

.

 

.

 

 

 

“뭐, 일단 내 이름은 승준이야. 네 이름은 나도 아니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어"

 

 

 

 

 

의자에 털썩 걸쳐앉은 승준이 말했다. 한숨을 푹푹 쉬는 승준을 보며 아이는 이 틈을 타 승준에게 ‘이거 꿈이죠?’ 라고 말하려고 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꿈에서 이거 꿈이냐고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깨우려고 한다.’ 가 진짜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거 꿈이-”

 

“어, 맞아 이거 꿈이야"

 

“...?”

 

“염선혜,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

 

 

 

 

 

선혜는 당황스러웠다. 예상한 반응과 다르게 행동하는 승준이 이상했다. 꿈… 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생생한 이 상황에 선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니까, 우선 여기는… 너의 꿈을 만드는 공간이야. 그리고 나는 네 꿈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이야. 네가 최근 몇 년간 잠을 충분히 자지 않아서, 나는 꿈을 만들 새가 없었어. 나는 네가 잘 때만 꿈을 만들 수 있거든. 네가 오늘도 쓰러지듯 잠에 들었을 때, 아까 네가 본 그 공간 있지? 거기로 내려가서 급하게 꿈을 만들던 중이었어. 근데 갑자기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킨거야. 원래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경우는 절대 없어야 해.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기계는 자동으로 멈추게 되고 큰 굉음을 지르게 되거든. 그리고… 그 기계는 네가 죽었을 때만 멈추게 설정되어있어.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지금 저 기계는 어찌됐건 멈췄고… 현실에서의 너는 혼수상태라는 거야.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상태, 뭐 그런거"

 

 

 

 

 

선혜는 멍하니 승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잠깐만, 그럼 저는 왜 여기 와있는데요? 여기 꿈이라면서. 그, 그 기계들이 멈춘 거면 저는 꿈을 못 꾸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그 기계는 왜 오작동을 일으킨 건데요?”

 

 

 

 

 

“... 그건 나도 몰라. 기계들이 왜 오작동을 일으킨 건지 잘 모르겠어. 저걸 고쳐야 다시 네가 돌아갈 방법을 찾든 뭘 하든 할텐데... 그리고 원래 이 공간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못 와. 근데 네가 여기 온 거야. 네가 어떻게 온 건지도 모르겠어, 일단 확실한 건, 너는 이미 현실 세계에서는 혼수상태 라는거지"

 

 

 

 

 

“...”

 

 

 

 

 

“일단 저 기계를 고쳐야 해. 저걸 고쳐야 현실의 네가 정신이 돌아오고, 그 때 현실 세계에서 너를 깨우면 여기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넌 여기 있으면 안돼"

 

 

 

 

 

“......”

 

 

 

 

 

 

 

 

 

 

 

 

 

 

 

 

 

 

 

 

 

 

 

 

 

 

 

2.

 

 

 

 

 

“배고파요”

 

“여기선 원래 배 안 고픈데?”

 

“아, 심심하다는 뜻이잖아요오”

 

 

 

 

 

선혜는 의자에 걸터앉아 기계를 고치는 승준의 뒤를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벌써 며칠 째 여기서 저거를 고치고 있는지, 나랑도 안 놀아주고 재밌는 이야기 뭐 그런 것도 안 해주고… 꿍얼대면서 심심해서 죽으려고 하는 선혜의 목소리를 들으며 피식 웃은 승준이 못 이기겠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여기에는 할 게 없는데"

 

“꿈 관리자라면서요! 저 궁금한 거 엄청 많은데 그거 물어보면 안 돼요?

 

 

 

 

 

승준의 말을 ‘그래 너랑 시시콜콜한 이야기 해줄게` 로 받아들인 선혜가 신나서 질문을 마구 퍼부었다. 그동안은 선혜에 대한 주제로만 이야기를 했어서, 승준이 여기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여기서 일했어요?”

 

“....으음… 너 태어났을 때부터?”

 

“와 정말요? 그럼 제가 꾼 꿈들 다 오빠가 만든 거예요?”

 

“으응 그렇지… 근데 잠깐 뭐라고? 오빠?”

 

“으잉? 아니에요?”

 

“언제부터 우리가 그렇게 친했냐…”

 

“저 태어났을 때부터 제 머릿속에 있었던 거면… 충분히 친한 거 아닌가"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러면 오빠는 제가 사는 18년 동안 여기서 계속 이런 일만 했던 거에요?”

 

 

 

 

 

기계를 만지던 승준의 손이 멈췄다. 으응.. 뭐 그렇지… 근데 그게 당연한 거니까… 대충 대답한 승준은 다시 기계를 고치는 데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럼 제 꿈 만드는데 그렇게 생생하게 어떻게 만드는 거에요? 바깥에서 살아본 적두 없으면서"

 

“니 기억들이 있잖아. 그거 보고 나도 배우는 거지”

 

“아 정말요? 와 짱신기해.. 저 또 물어보고싶은 거 있어요"

 

“....너 안 졸리냐?”

 

“여기서는 배도 안고프다는데, 잠은 와요? 웃기는 짬뽕이구만"

 

“너 깨어있을 때 내가 자거든. 음… 지금 생각해보니 잠이 안 올 수 밖에 없겠다”

 

“왜요?”

 

“너 지금 계속 자고있잖아"

 

 

 

 

 

아, 이거 꿈이지… 생각하면 할 수록 복잡해지는 승준의 존재와 이 정체불명의 공간에 머리가 아파오는 선혜다. 잠도 안 오고, 배도 안 고픈 무한한 이 공간에서 시간을 때우려면 유일하게 본인 옆에 있는 승준과 대화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지루하지만 긴 며칠을 승준과 대화를 나누며 지냈다. 다정한 듯 무심하게 본인의 질문에 답해주는 승준 덕에 나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오빠는 저에 대해서 다 알고 계신거예요?”

 

“너보다 너를 더 잘 알지"

 

“아, 그 말 뭐야 완전 오글거려요 ㅋㅋ”

 

“뭐가 웃겨 사실인데"

 

“그래도~ 근데 오빠는 되게 생긴거랑 다르게 엄청 친절한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생겼는데"

 

“막.. 말도 안 걸어줄 것 같고 다 무시할 것 같이 생겼어요"

 

 

 

 

 

내가 그렇게 무서워보였어? 네. 근데 지금은 안그래요 헤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실실 웃는 선혜가 귀여웠다. 잠깐, 귀여워? 미쳤나봐 한승준 지금 니 주인이 귀엽다고? 승준은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다시 기계를 고치는데 몰입했다. 뒤에서 재잘대는 선혜의 목소리가 들릴때마다 손이 떨리는 것 같았다. 아 진짜 설마…

 

 

 

 

 

“저 잠깐 위에 올라가서 뛰고 와도 돼요? 계속 여기 앉아있으니까 몸이 찌뿌둥하네"

 

“어어 그래 좀 갔다와라"

 

 

 

 

 

계단을 뛰어올라가 책상 밑에서 나오던 선혜는 책상에 머리를 부딪혔다. 아윽,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나 책상 위를 살펴보다, 책상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는 꽃병을 발견했다. 여기 이런게 있었나… 근 며칠 간 책상 아래 지하에서만 머물러있었어서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꽃병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선혜는 꽃병을 들어 병에 새겨져있는 글씨를 읽어갔다.

 

 

 

 

 

“럽 댓 캐낫 비 푸.…뭐라는거야”

 

 

 

 

 

선혜는 꽃병에 적혀있는 영어와, 이름을 모르는 하얀 꽃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 그냥 꽃병을 내려놓았다. 영어에는 영 젬병인데다 꽃의 이름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아는 꽃의 이름은 해바라기, 장미 이런 것 밖에 없어서, 금세 관심을 거둔 채 커다랗고 하얀, 아무것도 없는 이 신비한 공간에서 천천히 뛰었다.

 

 

 

한 편, 지하에 혼자 남아 기계를 만지작거리던 승준은 곧 장갑을 벗어 책상에 놓고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승준은 한숨을 푹 쉬며 생각했다. 저거… 다 고치면 선혜는 돌아가는 건가? 원칙 상 둘은 절대 만나면 안되는 사이이기때문에 선혜를 현실세계로 돌려보내고 나면 선혜의 기억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을 직접 승준의 손으로 지워버려야했다. 꼴에 지금 쟤랑 정든 건가, 싶어서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쓸어 올리던 승준은 계단을 콩콩 내려오는 선혜의 발소리를 듣고 급하게 장갑을 다시 착용했다.

 

 

 

 

 

“후으… 아 힘들어… 이거 뭐 리얼로 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들죠?”

 

 

 

 

 

선혜는 터벅터벅 걸어와 승준이 앉아있는 의자 앞에 털썩 앉았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승준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승준의 눈을 바라보았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흐르다 승준이 먼저 눈을 피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 쪽에 놓여있는 부품들을 집어 기계에 꽂아 넣었다. 괜히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는 승준의 뒤통수를 빤히 쳐다보던 선혜가 입을 열었다.

 

 

 

 

 

“...오빠 귀 빨개졌어요"

 

“어? 어어… 더워서…”

 

 

 

 

 

뒤도 안 돌아보고 급하게 귀를 가리는 승준을 보며 슬쩍 웃는 선혜였다. 그 뒤로 말을 더 잇지 않고 계속해서 기계를 만지는 승준을 바라보았다. 뒤통수가 따가운 승준은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안하니 어색해서 미칠 것 같았다. 항상 선혜가 먼저 살갑게 말을 걸어왔기에, 아무말도 하지 않는 선혜가 어색했다. 뒤를 돌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눈이라도 마주친다면… 고개를 작게 좌우로 흔든 승준이 눈에 힘을 주고 다시 천천히 부품을 끼워넣으며 기계를 고쳤다.

 

 

 

 

 

 

 

 

 

 

 

 

 

 

 

 

 

 

 

 

 

 

 

 

 

3.

 

 

 

 

 

 

 

며칠 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텅 빈 하얀 공간에서 뛰어다니던 선혜는 뜀박질을 멈추고 털썩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불규칙적으로 쉬던 숨이 점점 정상적으로 돌아오니, 선혜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둥둥 떠다녔다.

 

 

 

 

 

“... 내가 싫은가?”

 

 

 

 

 

그 날 이후로 승준은 본인과 눈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눈에 띄게 시선을 돌리고 화제를 돌렸다. 선혜는 여전히 그 때 마주쳤던 승준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생각났다. 의미심장했던 그 눈빛에 담긴 승준의 마음이, 어느정도 읽혔었다. 아, 귀 빨개지는 것 같은데. 귀에 손을 대보니 뜨거웠다. 두근대는 마음을 감추고 조용히 바닥을 짚고 일어나 가운데에 있는 책상으로 뛰어갔다. 급하게 계단을 뛰어내려가니 책상에 엎드려 숨을 색색 쉬고 있는 승준이 보였다. 분명 자는 건 아닐텐데, 싶어서 조용히 승준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승준이 고개를 확 들더니 본인의 앞에 앉아있는 선혜를 보곤 눈에 띄게 화들짝 놀랐다. 선혜는 눈을 피하지 않고 승준의 눈을 빤히 쳐다보는데, 안절부절 못하던 승준은 눈을 피해버렸다. 그리곤 일어서려고 하는 걸 선혜가 손목을 잡아 막았다.

 

 

 

 

 

“왜 눈 피해요..?”

 

“...”

 

“나 안 보고 싶어요? 나는 보고 싶은데,”

 

“.....”

 

“왜 계속 얼굴 안 보여줘요…”

 

 

 

 

 

크게 일렁이는 승준의 눈동자를 보았다. 선혜는 확신을 얻고 승준을 끌어당겨 세게 안았다. 파르르 떨리는 승준의 몸에, 손을 승준의 머리 위로 올려 쓰다듬었다. 아무 말 없이 선혜를 안고있던 승준은 잠시 뒤 선혜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왜 울어요…”

 

“나, 흐윽, 저거 다 고치며언, 너 다시는, 못 봐"

 

“네?”

 

“너랑 나는, 만나면 안 돼애…”

 

“... 저 그냥 여기서 지내면 안 돼요?”

 

“흐윽, 안돼. 너, 가야해애… 너 인생은 어쩌려고"

 

 

 

 

 

말도 제대로 못 이으면서 꾸역꾸역 다 말하는 승준에 선혜도 감정이 북받혔다. 거듭 그냥 여기서 지내면 안 되냐고 묻는데도, 펑펑 울면서 안 된다고 대답하는 승준에 선혜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승준에게 말했다.

 

 

 

 

 

“...저 가야해요?”

 

“어, 가야해.. 무조건 가야해…”

 

 

 

 

 

승준의 완곡한 대답에 결국 꾹꾹 참고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승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소리내어 울었다. 대체 왜, 다시는 못 본다는 생각을 하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가기 싫었다. 나 많이 정들었나보다.

 

 

 

 

 

승준의 품에 안겨 펑펑 울던 선혜의 머리를 쓰다듬던 승준은 조심스럽게 선혜의 얼굴 잡아 입을 짧게 맞추었다. 입술을 떨어트린 둘은 눈가에 잔뜩 물기가 어린채로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승준은 빨개진 눈을 힘껏 휘어 웃어보이며 선혜에게 말했다.

 

 

 

 

 

“잘 가,”

 

 

 

 

 

그 말을 끝으로 승준은 기계에 붙어있는 버튼을 눌렀다.

 

 

 

 

 

 

 

 

 

 

 

 

 

 

 

 

 

 

 

4.

 

 

 

 

 

 

 

 

 

“야, 피카츄 돈가스 사먹자"

 

“어 난 돈 없는데…”

 

“아 뭐야~~~ 얼른 가지고 와"

 

“알겠어 집에 빨랑 갔다올게"

 

 

 

 

 

집으로 빠르게 달려가던 선혜는 아파트 화단에서 익숙한 꽃을 발견했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으음 뭐지? 평소 꽃에는 아무 관심 없던 선혜였지만 왠지 그 꽃에 시선이 꽂혀 집에 들러야한다는 목적조차 잊은채로 꽃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 찾아볼까, 급하게 네이버를 켜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다.

 

 

 

 

 

“백목련이구나…예쁘네”

 

 

 

 

 

선혜는 미련없이 핸드폰을 집어넣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백목련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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