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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절 사랑해주셨다면!"

 

 

 

"짐의 사랑을 바랬나?"

 

 

 

"예 그랬습니다!"

 

 

 

"짐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무겁게 내려앉은 장내에 황제가 던진 말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무릎 꿇고 죄를 청하는 황후를 보는 눈빛은 무관심이었다. 너희들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는 듯

 

 

 

황궁의 모든 여인은 황제의 것인데, 황후가 불륜에 들키고는 적반하장으로 뻔뻔하게 나왔다. 황제의 반응이 더 놀라웠다. 사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부부관계였지만, 끝까지 관심 한톨 주지 않는 황제를 보고는 황후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인상을 찌푸린 황제는 치우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들어갔다.

 

 

 

"수선화는?"

 

 

 

"꽃이... 개화하였습니다"

 

 

 

"보러 가겠다"

 

 

 

현 황제. 한승준. 성군이라고 자자한 선황의 유일한 후계자였다. 그가 아름다움에 집착하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밖으로는 성군으로 알려져 있던 아버지였지만, 실상은 여자를 끼고 노는 바람둥이였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어질게 정치를 했는지 의문일 뿐이었다. 당연히 황제의 관심은 제 하나뿐인 아들에게 가지 않았고, 외롭게 지내던 전 황후는 한승준에게 항상 당부했다.

 

 

 

"아름다워야 합니다."

 

 

 

광적으로 고귀하고 아름다움에 집착하던 전 황후는 결국 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성대하게 치러진 장례식에서도 아무도 그녀를 위한 눈물을 흘려주지 않았다. 하나뿐인 아들과 남편까지도.

 

 

 

그 이후 갑자기 승하한 전 황제에 의해 이른 나이에 황위에 앉게 된 한승준은 귀족들을 안정시켜놓고는 전 황후처럼 아름다움을 찾았다. 한심하게 여겼었는데 시작은 수선화였다.

 

 

 

싸늘한 냉궁에 피어난 수선화는 승준의 마음을 울렸다. 꽃을 지겹게 보면서도 어떠한 감정이 든 적이 없는데 객관적으로 봐도 아름답지 않은 꽃이었지만 그렇기에 승준의 마음에 들었다.

 

 

 

"아름다운 물건을 바쳐라"

 

 

 

아름다운 옷을 걸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거울을 볼 때면 한승준은 멍하니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자신에게 빠진 것이다. 옛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르키소스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버린 것이었다. 본래 아름다운 외모인 승준이지만 작정하고 꾸미고 다니니 누구도 번복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제국은 천천히 내부에서부터 망가졌다. 행정은 귀족들이 붙들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망가졌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데 신경을 쏟는 황제에 귀족들 사이에는 황제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만이 돌았다.

 

 

 

반란은 금방이었다. 한번 불붙은 불씨는 걷잡을 수 없이 크게 타올랐다. 국정은 돌보지 않고 허구한 날 꽃들만 보고 있으니 백성들의 원성 또한 자자했다.

 

 

 

반란이 일어나는 그날까지도 한승준은 꽃밭에 앉아있었다. 아름다운 꽃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는 아름답게 관리해주었던 것이었다. 고함이 들려오면서 반란군은 황제의 앞까지 도달했다. 황제를 바라보는 이들은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무장한 병사들을 바라보면서도 환히 웃는 황제가 너무 아름다워서일까 쉬이 무어라 말을 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국정을 돌보지 않고, ㅇ.."

 

 

 

"죽여"

 

 

 

"..."

 

 

 

"가장 완전무결한 지금 이 상태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죽음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발악 같아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저 모습이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바칠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자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듯했다. 황제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황제는 그날 죽었다. 목숨이 끊어진 것이 아닌 그의 명예와 자존심이 짓밟혔다. 그가 아끼던 수선화는 불에 타 없어졌고,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정원은 황폐한 땅이 되었다. 산 것도 기적인데 귀양을 와서도 한승준은 없어져 버린 제 아름다움을 보다가는 점차 미쳐갔다.

 

 

 

훗날 역사서에는 두 가지의 해석으로 남게 되었다

 

 

 

끝까지 자존심을 포기하지 못한 황제

 

 

 

그저 아름답다고 밖에 말 할 수 없었던 황제

 

 

 

둘 다 황제였던 승준을 뜻하는 칭호였다.

 

 

 

 

 

하지만 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수선화는 이젠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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